Wednesday, July 3, 2013

7. 결심 테스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대학을 갓졸업한 26살 사회초년병인 나에게 경영기획실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이 주어졌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팀의 주된 임무는 대운하관련 광고제작의 컨트롤 타워로써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프로젝트팀과 협의해 광고제작에 참여하는 여러업체들과 의견과 스케쥴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타회사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과 미팅이 이어졌다. 공장에서 경비 아르바이트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들이 주는 스릴과 짜릿함이 커지고 광고제작물이 완성단계에 이를무렵 광우병파동이 전국민의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국민들에게 선보여지기도 전에 좌초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런던으로 출국하기로 한 시기가 다가왔지만 그동안 공들여 만들어 놓은 광고제작물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교수님과 이사님은 조금만 떠날 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청하셨다. 나 또한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한두달 차이로 큰일 날것도 아니었기에 난 그렇게 조금더 잔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는 사이 우리팀은 하나은행의 고위급 인사와 연결되어 하나은행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내부 프로모션 일들이었는데 새로운 일들은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일과 사람만나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내부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약속된 보수가 몇달째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팀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믿고 따르는 교수님이 직접 연관되어있는 회사였기때문에 이해하며 기다렸던것이 결국 문제가 된것이었다. 처음 계획한 출국시기 6월은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린 10월에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인은 결국 폐업하기에 이르렀고 폐업과 함께 지급받지 못한 급여가 약 900여만원 가까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사는 투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것으로 밝혀졌다.

회사 폐업후 이대로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동안의 세계여행을 계획하면서 사실 가장 걱정되었던것이 여행경비였지만 모자란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일단 가진것만 들고 떠나기로 했다. 약 두달간 머무를수 있는 체류비정도였다. 필요한돈이 전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다가 또 어떤 상황이 그때 내 발목을 붙잡을지 몰랐기 때문에 결심이 섰을때 해야했다. 런던으로 곧 바로 떠나려던 계획을 수정해 호주로 떠나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여행자금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다시 준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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