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7, 2013

15. 젊으니까? 젊으니까!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LA 카운티뮤지엄에 가기위해 할리우드에서 버스를 갈아 타야했다. 메인스트리트와 스프링 스트리트가 교차되는 사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할지 갈피를 못잡던 중에 잘 차려입은 어느 흑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 사람은 말하길 "여기서 거리가 좀 있지만 당신은 젊으니까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거에요."
젊.으.니.까? 이 한마디가 얼마나 강력했던지 걷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흑인에게 소중한것을 깨닫게 해줘 고맙다는 듯 인사를 하고 가르쳐준 방향으로 젊음의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걸어간 길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주택가였고 이 길을 버스를 타고 지나쳤으면 어쩔뻔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나게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걷기를 30분, 한시간이 지났다.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꽤 걸었는데 미술관은 나오지 않아 발과 배낭을 멘 어깨가 너무 아파왔다. 걸어갈 수 있다해서 금방 갈줄 알았는데 걸어가보라고 했던 그 흑인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중한걸 깨닫게 해준 고마운 사람에서 이제는 원망스러운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 30분을 더 걸었는데도 미술관은 나오지 않았고 길을 잘못들었거나 아직도 한참을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 난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계획대로 버스를 탔다면 몸도 힘들지 않고 시간도 아껴 미술관에서 여유롭게 작품을 관람했을텐데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몹시 허기지고 지쳐있던 난 근처 가게에 들어가 지도를 사서 현재 나의 위치가 어딘지 점원에게 물어 보며 돌아가는 버스를 알아봤다. 그래도 혹시 몰라 LA카운티 뮤지엄이 어디 있는지 점원에게 물었는데 여기서 5분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 바로 앞까지 왔는데도 그걸 모르고 포기하려고 했던 난 어느새 배고픈것도 잊은채 다시 미술관으로 향했다. 계획보다 늦게 도착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무료로 입장하는 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고 더군다나 늦은시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아 여유롭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는 현대 미술의 거장들 작품으로 가득차 있어 눈과 나의 지적욕구가 호사를 누릴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가서 그랬을까 LA카운티 뮤지엄은 지금까지도 내가 가본 미술관중에 특히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다. 쉽고 빠르게 그리고 편하게 다녀왔어도 LA 카운티뮤지엄 자체가 워낙 좋은 미술관이었기 때문에 그 감동이 더하거나 덜하지는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여행하며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들은 한마디는 내게 결코 작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날 들은 "당신은 젊으니까"란 한마디는 나의 젊은날에 젊음을 감사히 여길수 있게 만든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르네마그리뜨의 this is not a pipe
제프쿤스의 caterpillar ladder

Thursday, December 26, 2013

14.로저와의 만남


미국에 도착하고 첫 여정으로 미국의 석유재벌 폴 게티가 평생에 걸쳐 모은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게티센터에 가기로 했다. 게티센터는 내가 머문 산타모니카 비치 근처 유스호스텔에서 버스로 한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유명작가의 예술작품을 볼 생각에 매우 들뜬 상태로 길을 나섰다.

게티센터는 듣던대로 소장작품의 규모가 실로 방대했고 당시 예술작품 구경에 막 관심을 가지던 내게 보물과 같은 곳이었다. 또한 한국의 여느 전시와는 달리 작품의 사진 촬영이 허용되어 나는 모든 작품을 사진으로 담아 오려는 사람처럼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미술관을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몇시간이 흘렀을까. 작품 구경에 넋을 잃고 있다가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미술관에서 슬슬 폐장을 알리는 분위기의 영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느낌상으로 이제 집에 갈때가 됐다는 얘기였다. 문득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숙소로 가는 마지막 버스시간이 몇시인지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티 미술관은 산위에 위치해있었고 버스타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케이블카를 타는 사람도 얼마 없고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늦게 내려오는 사람들중에 버스타러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자가용 주차장으로 향했다. 만약 숙소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미술관은 교외지역에 위치해 있어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만해도 앞이 깜깜해질 노릇이었다. 아까 미술관에 올때의 그 설레임은 온데 간데 없고 두려움과 밀려오는 걱정들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빠른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두세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은 안심이다. 하지만 내가 가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 그 중의 착하게 생긴 아저씨에게 산타모니카쪽으로 가는 버스가 아직 있냐고 물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 아저씨도 그 쪽으로 간다고 했고 아직 마지막 버스가 안온거 같다고 했다. 얼마나 기쁘던지 아저씨에게 연신 땡큐 땡큐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아저씨의 이름은 로져, 근처 식물원에서 일하고 집으로 가는길이라고 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대화를 하던중 너무나도 반가운 버스가 왔다. 버스에 타고서도 로저아저씨와 나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미국에 오고 나서 이렇게 미국사람과 오래 얘기하는건 처음이라 그 동안 궁금한 것들을 로져에게 많이 물었다. 다행히도 로져는 친절하게 나의 질문들에 답해 주었는데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대답이 있다. 대화를 나누던중 로져가 미국에 많은 도시에서 살아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난 그 중 어느 곳이 가장 살기 좋았냐고 물었다. 로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많은 도시에서 살아보니 가장 살기 좋았던 곳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던거 같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분명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유명 도시중 하나의 대답을 예상했는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겨나갔고 그의 대답은 내 마음에 큰 깨달음으로 날아왔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로져의 대답이 있는데 당시 난 LA 다음 목적지로 Texas 알링턴에 살고 있는 친구 현무를 만나러 갈 예정이었다. 알링턴에 갈 때 기차를 타고 싶었지만 48시간동안 가도 별반 다를거 없는 풍경이니 기차 타지말라는 어떤 경험자의 글을 인터넷 까페에서 본적이 있던 나는 고민을 로져에게 물었다.

로져는 잠시 생각하더니 본인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기차를 타고 가고 싶다고 했다. LA에서 알링턴까지 비행기를 타면 몇시간이면 도착하지만 기차로는 48시간동안 달려야 하고 창밖의 풍경도 별 다를것 없이 계속되 분명 지루함도 생길것이다. 그런데 기차로 이틀을 달려 반도 가지 못하는 넓은 땅을 가진곳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이런 광활함을 느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드물다. 무엇보다도 이틀동안 달리며 잠깐 잠깐씩 기차가 설때 역에 내려서 그 지역에서 볕을 쬐고 냄새를 맡고 공기를 마시며 잠깐이라도 그 지역을 경험하는 것은 기차 여행자만이 할수 있는 경험이다. 이 얘기에 내가 어떻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을까.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가 남긴 여운은 지금까지도 내게 유효하다. 요즘 나의 고민을 듣는다면 로져는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