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X 공항
입국심사관 : 얼마나 미국에 머무를 예정이죠?
-나 : 6개월 정도요.
입국심사관 : 6개월이요? 어떤목적으로 왔는데요? (무언가 미심쩍은듯)
-나 : 여행하기 위해 왔습니다.
입국심사관 : 6개월동안이나 여행을 한다구요? 당신 직업이 뭔데요?
-나 : 아 저는 광고기획하는 일을 합니다.
입국심사관 : 당신은 지금 회사에 소속되어 있나요?
-나 : (어디 소속이 안되어 있다면 불법체류할 사람으로 의심할거 같아서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소속되어 있다고 거짓말했다.) 네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요.
입국심사관 : 회사의 사장이 누군데요?
-나 : (회사의 사장이 누구냐고?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며 매우 친절하게 사장님의 이름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과 무슨관계냐고 다시 묻는다. 사장과 직원관계라고 얘기했더니 아니 무슨 회사길래 6개월동안 여행을 다닐 수 있는거냐고 또 묻는다. (아 뭐가 궁금한지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풍부해야 하는데 우리는 여행을 통해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이번에 6개월동안 미국여행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을 거에요. 내가 생각해도 이걸 영어로 설명했다는게 놀랍지만 입국심사관은 내가 웃으면서 안되는 영어로 매우 자세히 설명하는 모습에 억지로 이해된듯 했다. 이정도면 입국심사가 마무리 될줄 알았더니 다시 질문이 시작되었다.
입국심사관 : 6개월동안 여행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텐데 돈은 충분한가요? (경계를 풀지 않은듯 하다)
-나 : 일단 한두달 체류할 돈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가족들이 송금해줄 예정이에요. 한꺼번에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면 위험할지도 몰라서요.(사실 돈은 지금 가진게 전부였다.)
입국심사관 : LA에서는 어디서 머물예정입니까?
-나 : 원래 재워주기로 했던 친구가 연락이 두절되면서 머물곳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물어본 질문에 혹시 몰라 여자친구가 적어준 여자친구부모님댁 주소가 생각나 여자친구 부모님댁에서 머무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입국심사관은 또 의아해 하며 여자친구가 미국에 살고 있냐고 묻는다. 난 그렇다고 말하니 입국심사관은 여자친구가 미국사람이냐고 다시 물었고 난 그녀는 미국 시민이고 그녀의 부모님은 한국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입국심사관은 갑자기 너 바나나 있구나하는것 아닌가. 바나나? 난 바나나를 안가지고 있다. 입국심사할때 먹을거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바나나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에 정말 결백하다는 듯이 바나나가 없다고 얘기했다. 입국심사관은 바나나를 중얼거리며 입국도장을 내 여권에 찍어주었다.
약 2~30분에 걸친 진땀나는 입국심사를 통과했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바나나얘기가 뭔가 찝찝했다. 갑자기 바나나얘기를 왜 꺼냈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나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을 일컫는 속어였다. 어쨌든 미국에 무사히 입국했고 공항밖으로 나오니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햇살과 습도가 느껴지면서 미국에 온것이 실감났다. 어제까지만해도 한국에 있었고 겨울이었는데 단 하루만에 따뜻한 미국에 오다니! 감탄도 잠시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유스호스텔로 가기위해서 버스 타는곳을 찾아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이라고 보이는 곳은 없었다. 주변사람들은 모두 가족이나 지인들이 배웅나와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라 길 묻기도 애매했다. 한번도 와보지 않은곳에서 처음가보는곳에 가기위해 어쩔줄모르고 있다가 용기내 지나가는 사람에게 산타모니카 비치에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공항셔틀버스를 타고 나가서 다시 버스를 타야한단다. 결국 셔틀버스타는곳을 알아내 버스를 탔다. 공항셔틀버스라 그런가 버스 운전기사석이 무척 높았고 운전석엔 타는손님들에게 정말 반갑게 인사해주는 흑인아줌마기사님이 있었다. 우피골드버그를 닮은 버스기사는 무언가 좋은일이 있는지 정말 밝은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공항셔틀버스는 한국의 지하철처럼 마주보고 있는 형태였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가진 동양사람이라 그랬는지 배낭여행객이라 그랬는지 맞은편 미국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많은듯 보였다.
그리고 그중 한명이 내게 미국에 여행왔냐고 물었고 난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처음으로 미국에 왔고 2년동안 여행을 할건데 오늘이 그 첫번째 날이라고 덧붙였다. 내 대답에 승객들모두가 놀라는거 같았다. 버스 승객전부가 나의 이야기로 하나가 되는 분위기였다. 2년동안 여행을 한다는 사람이 많은건 아니니까 그렇게 승객들과 짧은 대화를 하며 내가 갈아탈 버스가 오는 정류장에 승객 몇명과 내렸고 같이 내린 승객중 하나가 내가 타야할 버스를 가르쳐주었다. 정류장에 내려 몇십미터를 걸었을까 뒤에서 버스 경적소리가 빵~빵~하고 울려 돌아보니 공항셔틀버스였다. 그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가진 흑인버스기사는 문을 열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멀리서 흔드는 그녀의 손짓은 앞으로 건강하게 여행잘하고 네가 원하는것을 꼭 찾길바래!라고 말하는거 같았다. 나도 그녀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공항에 입국할때까지만 해도 입국심사관의 까다로움에 미국사람들이 영 별로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버스기사와 길을 친절히 가르쳐주는 사람들때문에 미국은 정말 친절한 나라가 되었다. 앞으로의 여행에서 내가 뭘먹고 뭘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