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5, 2013

9. 혼자선 하기 어려운 선택.

그녀와의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비행기 티케팅까지 끝냈지만 호주에 가기로한 결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당시 회사 폐업후 받는 실업급여를 합쳐 비행기티켓을 제외하고 약 300만원정도 가지고 한국을 떠나게 될것이었는데 국제외환위기때문에 US환율은 IMF때보다 심각한 달러당 1500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상식적으론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주로 반드시 가야 했지만 좋아져 가는 그녀를 두고 호주로 떠나는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이와같은 고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녀와 얘기를 나눈후 난 망설임 없이 호주행 비행기티켓을 취소하고 미국행 티켓을 샀다. 혼자서는 내리기 어려운 선택이 그녀의 응원과 조언으로 너무도 쉽게 결정되고 진행되었다.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것이었다. 불을 보듯 뻔했지만 닥치지 않은 걱정과 고민으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으며 한편으론 과연 절벽과 같은 상태에서 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까라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26년을 살면서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도전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테스트가 시작된것이다. 그렇게 두려움과 설레임속에 2009년 2월 27일 출국 날짜가 정해졌다.

Thursday, July 4, 2013

8. 새로운 만남.

안산에서 강남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며 출근전에 강남구청에 있는 영어회화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에서 오랫동안 영어를 배워왔지만 변변치 않은 회화실력을 가지고 있던 난 이번 여행을 위해 영어를 다시 배우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삼육어학원으로 다른 어학원에 비해 수업료가 저렴하면서 수업시간은 더 많았고 선생님들은 아무래도 종교적배경을 가지고 수업에 임해서 그런지 매우 성실하며 친절했다. 난 매일 2시간수업뿐 아니라 동시통역으로 이루어지는 금요예배에도 참석했다. 해당 종교를 믿진 않았지만 영어배움에 도움이 되는 행사엔 최대한 참여하기로 한것이다.

회사가 폐업하며 보수를 못받으면서 학원 수강료를 내는게 부담스러워졌지만 영어공부는 계속해야만 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학원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해당 수업은 매달 5만원의 참가비를 통해 영어독해와 회화까지 할수 있어 내 상황에 딱 맞는 수업이었다. 난 영어공부와 함께 호주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진행했고 비행기티케팅과 비자발급까지 모든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나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사람이 생기게 됐다. 상대는 우리반을 담당하던 매우 털털하고 밝은모습이 인상적인 재미교포 여선생이었다. 이제 2달만 있으면 난 호주로 떠나고 여선생은 얼마후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예상되는 서로의 다음 스텝이 많이 달라 망설여졌지만 난 여선생에게 고백했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일이 생길지 알수 없었지만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Wednesday, July 3, 2013

7. 결심 테스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대학을 갓졸업한 26살 사회초년병인 나에게 경영기획실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이 주어졌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팀의 주된 임무는 대운하관련 광고제작의 컨트롤 타워로써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프로젝트팀과 협의해 광고제작에 참여하는 여러업체들과 의견과 스케쥴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타회사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과 미팅이 이어졌다. 공장에서 경비 아르바이트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들이 주는 스릴과 짜릿함이 커지고 광고제작물이 완성단계에 이를무렵 광우병파동이 전국민의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국민들에게 선보여지기도 전에 좌초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런던으로 출국하기로 한 시기가 다가왔지만 그동안 공들여 만들어 놓은 광고제작물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교수님과 이사님은 조금만 떠날 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청하셨다. 나 또한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한두달 차이로 큰일 날것도 아니었기에 난 그렇게 조금더 잔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는 사이 우리팀은 하나은행의 고위급 인사와 연결되어 하나은행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내부 프로모션 일들이었는데 새로운 일들은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일과 사람만나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내부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약속된 보수가 몇달째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팀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믿고 따르는 교수님이 직접 연관되어있는 회사였기때문에 이해하며 기다렸던것이 결국 문제가 된것이었다. 처음 계획한 출국시기 6월은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린 10월에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인은 결국 폐업하기에 이르렀고 폐업과 함께 지급받지 못한 급여가 약 900여만원 가까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사는 투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것으로 밝혀졌다.

회사 폐업후 이대로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동안의 세계여행을 계획하면서 사실 가장 걱정되었던것이 여행경비였지만 모자란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일단 가진것만 들고 떠나기로 했다. 약 두달간 머무를수 있는 체류비정도였다. 필요한돈이 전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다가 또 어떤 상황이 그때 내 발목을 붙잡을지 몰랐기 때문에 결심이 섰을때 해야했다. 런던으로 곧 바로 떠나려던 계획을 수정해 호주로 떠나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여행자금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다시 준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