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LA 카운티뮤지엄에 가기위해 할리우드에서 버스를 갈아 타야했다. 메인스트리트와 스프링 스트리트가 교차되는 사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할지 갈피를 못잡던 중에 잘 차려입은 어느 흑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 사람은 말하길 "여기서 거리가 좀 있지만 당신은 젊으니까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거에요."
젊.으.니.까? 이 한마디가 얼마나 강력했던지 걷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흑인에게 소중한것을 깨닫게 해줘 고맙다는 듯 인사를 하고 가르쳐준 방향으로 젊음의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걸어간 길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주택가였고 이 길을 버스를 타고 지나쳤으면 어쩔뻔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나게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걷기를 30분, 한시간이 지났다.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꽤 걸었는데 미술관은 나오지 않아 발과 배낭을 멘 어깨가 너무 아파왔다. 걸어갈 수 있다해서 금방 갈줄 알았는데 걸어가보라고 했던 그 흑인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중한걸 깨닫게 해준 고마운 사람에서 이제는 원망스러운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 30분을 더 걸었는데도 미술관은 나오지 않았고 길을 잘못들었거나 아직도 한참을 더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 난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계획대로 버스를 탔다면 몸도 힘들지 않고 시간도 아껴 미술관에서 여유롭게 작품을 관람했을텐데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몹시 허기지고 지쳐있던 난 근처 가게에 들어가 지도를 사서 현재 나의 위치가 어딘지 점원에게 물어 보며 돌아가는 버스를 알아봤다. 그래도 혹시 몰라 LA카운티 뮤지엄이 어디 있는지 점원에게 물었는데 여기서 5분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 바로 앞까지 왔는데도 그걸 모르고 포기하려고 했던 난 어느새 배고픈것도 잊은채 다시 미술관으로 향했다. 계획보다 늦게 도착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무료로 입장하는 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고 더군다나 늦은시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아 여유롭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는 현대 미술의 거장들 작품으로 가득차 있어 눈과 나의 지적욕구가 호사를 누릴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가서 그랬을까 LA카운티 뮤지엄은 지금까지도 내가 가본 미술관중에 특히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다. 쉽고 빠르게 그리고 편하게 다녀왔어도 LA 카운티뮤지엄 자체가 워낙 좋은 미술관이었기 때문에 그 감동이 더하거나 덜하지는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여행하며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들은 한마디는 내게 결코 작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날 들은 "당신은 젊으니까"란 한마디는 나의 젊은날에 젊음을 감사히 여길수 있게 만든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르네마그리뜨의 this is not a pipe
제프쿤스의 caterpillar lad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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