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비행기 티케팅까지 끝냈지만 호주에 가기로한 결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당시 회사 폐업후 받는 실업급여를 합쳐 비행기티켓을 제외하고 약 300만원정도 가지고 한국을 떠나게 될것이었는데 국제외환위기때문에 US환율은 IMF때보다 심각한 달러당 1500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상식적으론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주로 반드시 가야 했지만 좋아져 가는 그녀를 두고 호주로 떠나는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이와같은 고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녀와 얘기를 나눈후 난 망설임 없이 호주행 비행기티켓을 취소하고 미국행 티켓을 샀다. 혼자서는 내리기 어려운 선택이 그녀의 응원과 조언으로 너무도 쉽게 결정되고 진행되었다.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것이었다. 불을 보듯 뻔했지만 닥치지 않은 걱정과 고민으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으며 한편으론 과연 절벽과 같은 상태에서 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까라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26년을 살면서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도전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테스트가 시작된것이다. 그렇게 두려움과 설레임속에 2009년 2월 27일 출국 날짜가 정해졌다.
Friday, July 5, 2013
Thursday, July 4, 2013
8. 새로운 만남.
안산에서 강남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며 출근전에 강남구청에 있는 영어회화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에서 오랫동안 영어를 배워왔지만 변변치 않은 회화실력을 가지고 있던 난 이번 여행을 위해 영어를 다시 배우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삼육어학원으로 다른 어학원에 비해 수업료가 저렴하면서 수업시간은 더 많았고 선생님들은 아무래도 종교적배경을 가지고 수업에 임해서 그런지 매우 성실하며 친절했다. 난 매일 2시간수업뿐 아니라 동시통역으로 이루어지는 금요예배에도 참석했다. 해당 종교를 믿진 않았지만 영어배움에 도움이 되는 행사엔 최대한 참여하기로 한것이다.
회사가 폐업하며 보수를 못받으면서 학원 수강료를 내는게 부담스러워졌지만 영어공부는 계속해야만 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학원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해당 수업은 매달 5만원의 참가비를 통해 영어독해와 회화까지 할수 있어 내 상황에 딱 맞는 수업이었다. 난 영어공부와 함께 호주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진행했고 비행기티케팅과 비자발급까지 모든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나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사람이 생기게 됐다. 상대는 우리반을 담당하던 매우 털털하고 밝은모습이 인상적인 재미교포 여선생이었다. 이제 2달만 있으면 난 호주로 떠나고 여선생은 얼마후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예상되는 서로의 다음 스텝이 많이 달라 망설여졌지만 난 여선생에게 고백했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일이 생길지 알수 없었지만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회사가 폐업하며 보수를 못받으면서 학원 수강료를 내는게 부담스러워졌지만 영어공부는 계속해야만 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학원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해당 수업은 매달 5만원의 참가비를 통해 영어독해와 회화까지 할수 있어 내 상황에 딱 맞는 수업이었다. 난 영어공부와 함께 호주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진행했고 비행기티케팅과 비자발급까지 모든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나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사람이 생기게 됐다. 상대는 우리반을 담당하던 매우 털털하고 밝은모습이 인상적인 재미교포 여선생이었다. 이제 2달만 있으면 난 호주로 떠나고 여선생은 얼마후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예상되는 서로의 다음 스텝이 많이 달라 망설여졌지만 난 여선생에게 고백했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일이 생길지 알수 없었지만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Wednesday, July 3, 2013
7. 결심 테스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대학을 갓졸업한 26살 사회초년병인 나에게 경영기획실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이 주어졌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팀의 주된 임무는 대운하관련 광고제작의 컨트롤 타워로써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프로젝트팀과 협의해 광고제작에 참여하는 여러업체들과 의견과 스케쥴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타회사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과 미팅이 이어졌다. 공장에서 경비 아르바이트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들이 주는 스릴과 짜릿함이 커지고 광고제작물이 완성단계에 이를무렵 광우병파동이 전국민의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국민들에게 선보여지기도 전에 좌초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런던으로 출국하기로 한 시기가 다가왔지만 그동안 공들여 만들어 놓은 광고제작물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교수님과 이사님은 조금만 떠날 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청하셨다. 나 또한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한두달 차이로 큰일 날것도 아니었기에 난 그렇게 조금더 잔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는 사이 우리팀은 하나은행의 고위급 인사와 연결되어 하나은행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내부 프로모션 일들이었는데 새로운 일들은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일과 사람만나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내부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약속된 보수가 몇달째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팀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믿고 따르는 교수님이 직접 연관되어있는 회사였기때문에 이해하며 기다렸던것이 결국 문제가 된것이었다. 처음 계획한 출국시기 6월은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린 10월에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인은 결국 폐업하기에 이르렀고 폐업과 함께 지급받지 못한 급여가 약 900여만원 가까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사는 투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것으로 밝혀졌다.
회사 폐업후 이대로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동안의 세계여행을 계획하면서 사실 가장 걱정되었던것이 여행경비였지만 모자란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일단 가진것만 들고 떠나기로 했다. 약 두달간 머무를수 있는 체류비정도였다. 필요한돈이 전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다가 또 어떤 상황이 그때 내 발목을 붙잡을지 몰랐기 때문에 결심이 섰을때 해야했다. 런던으로 곧 바로 떠나려던 계획을 수정해 호주로 떠나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여행자금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다시 준비가 시작되었다.
런던으로 출국하기로 한 시기가 다가왔지만 그동안 공들여 만들어 놓은 광고제작물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교수님과 이사님은 조금만 떠날 시기를 늦춰줄 것을 요청하셨다. 나 또한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싶었고 한두달 차이로 큰일 날것도 아니었기에 난 그렇게 조금더 잔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때를 기다리는 사이 우리팀은 하나은행의 고위급 인사와 연결되어 하나은행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내부 프로모션 일들이었는데 새로운 일들은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일과 사람만나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내부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약속된 보수가 몇달째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팀의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믿고 따르는 교수님이 직접 연관되어있는 회사였기때문에 이해하며 기다렸던것이 결국 문제가 된것이었다. 처음 계획한 출국시기 6월은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린 10월에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인은 결국 폐업하기에 이르렀고 폐업과 함께 지급받지 못한 급여가 약 900여만원 가까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사는 투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것으로 밝혀졌다.
회사 폐업후 이대로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동안의 세계여행을 계획하면서 사실 가장 걱정되었던것이 여행경비였지만 모자란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일단 가진것만 들고 떠나기로 했다. 약 두달간 머무를수 있는 체류비정도였다. 필요한돈이 전부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다가 또 어떤 상황이 그때 내 발목을 붙잡을지 몰랐기 때문에 결심이 섰을때 해야했다. 런던으로 곧 바로 떠나려던 계획을 수정해 호주로 떠나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여행자금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다시 준비가 시작되었다.
Friday, June 28, 2013
5. 그럼 런던으로
민섭선배와의 만남 이후 막연히 뉴욕으로 떠나겠단 생각이 런던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느덧 종강이 다가왔고 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티켓과 몇달간의 체류비로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근처에 있는 옥수수전분생산공장에서 경비로 일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세번은 밤을 새야 하는 일이었지만 시간대비 보수도 좋고 식사도 제공되며 집에서도 가까워 여러모로 아르바이트로써 제격인 일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달에 140만원정도를 저축할 수 있었고 계획대로 된다면 6개월 뒤 출국할 수 있을터였다.
그렇게 경비로 일한지 한달정도가 지났을 쯤 호석이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호석이형은 학번상으론 3학번 후배였지만 마케팅쪽에서 꽤 일하다가 학교에 들어와 사실상 업계 선배였다. 좋은 취직자리가 있는데 면접 볼수있겠냐는 전화였다. 연봉도 괜찮고 광고대행사로서 크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라고 했는데 순간 욕심이 났다. 광고를 전공하며 졸업 후 멋지게 광고회사에 다니는 모습을 꿈꿔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호석이형한테 현재 준비하고 있는것에 대해 설명하며 감사한 제안이지만 면접보는 것은 어렵겠다는 대답을 전했다. 아쉽긴 했지만 소개받아 들어간 일자리라면 쉽게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았고 그동안 준비해온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좋은 조건의 제안을 통해 내 가치를 인정 받은것은 기쁜일이었다. 이 일을 통해 내 결심이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경비로 일한지 한달정도가 지났을 쯤 호석이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호석이형은 학번상으론 3학번 후배였지만 마케팅쪽에서 꽤 일하다가 학교에 들어와 사실상 업계 선배였다. 좋은 취직자리가 있는데 면접 볼수있겠냐는 전화였다. 연봉도 괜찮고 광고대행사로서 크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라고 했는데 순간 욕심이 났다. 광고를 전공하며 졸업 후 멋지게 광고회사에 다니는 모습을 꿈꿔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호석이형한테 현재 준비하고 있는것에 대해 설명하며 감사한 제안이지만 면접보는 것은 어렵겠다는 대답을 전했다. 아쉽긴 했지만 소개받아 들어간 일자리라면 쉽게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았고 그동안 준비해온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좋은 조건의 제안을 통해 내 가치를 인정 받은것은 기쁜일이었다. 이 일을 통해 내 결심이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4. 김민섭선배와의 만남.
대학로에서 경훈선배를 뵙고 2주 뒤 선배가 얘기했던대로 뉴욕지사장님이 한국에 들어오셨다. 이번엔 종로사무실에서 선배를 만났다. 알고보니 뉴욕지사장님도 우리과 선배셨다. 물론 나와 같이 학교에 다니진 않았지만 학교선배님이라는 말에 반가움이 더했고 경훈선배는 민섭선배에게 어느정도 얘기는 해두었으니 둘이서 더 얘기를 나누라며 자리를 비켜주셨다.
민섭선배에게 난 세계적 공연을 만들고 싶고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 아이디어를 가져오겠다는 나의 청사진을 선배에게 펼쳐보였다. 그 후 돌아온 선배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민섭선배는 정말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면 여행할 돈으로 대학로에서 작은 공연이라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편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일하기 위해선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적어도 3년은 공부해야 원할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과 뉴욕 브로드웨이의 공연시스템은 이미 너무나 확고히 짜여져 있어 틈새 찾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세계공연계를 양분하고 있는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웨스트엔드는 뉴욕보다 상대적으로 신인에게 가능성이 더 큰 시장이라는 정보도 들을수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던건 아닐까. 드라마같은 안도타다오의 이야기에 취해 내 능력은 고려치도 않은채 욕심만 부리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날때쯤 경훈선배가 다시 돌아오셨다. 살짝 풀이 죽어 있는 날 본 경훈선배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민섭선배가 한 얘기에 너무 쫄지말란 격려와 함께 그래도 본인은 나의 결심과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되버릴 뻔한 나의 생각이 폐기 되기엔 아직 일렀다. 대신 뉴욕 브로드웨이만 생각했던 내가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가능성을 알게 된 의미있는 날이었으며 또 한걸음 일보 전진이었다.
민섭선배에게 난 세계적 공연을 만들고 싶고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 아이디어를 가져오겠다는 나의 청사진을 선배에게 펼쳐보였다. 그 후 돌아온 선배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민섭선배는 정말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면 여행할 돈으로 대학로에서 작은 공연이라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편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일하기 위해선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적어도 3년은 공부해야 원할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과 뉴욕 브로드웨이의 공연시스템은 이미 너무나 확고히 짜여져 있어 틈새 찾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세계공연계를 양분하고 있는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웨스트엔드는 뉴욕보다 상대적으로 신인에게 가능성이 더 큰 시장이라는 정보도 들을수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던건 아닐까. 드라마같은 안도타다오의 이야기에 취해 내 능력은 고려치도 않은채 욕심만 부리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날때쯤 경훈선배가 다시 돌아오셨다. 살짝 풀이 죽어 있는 날 본 경훈선배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민섭선배가 한 얘기에 너무 쫄지말란 격려와 함께 그래도 본인은 나의 결심과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되버릴 뻔한 나의 생각이 폐기 되기엔 아직 일렀다. 대신 뉴욕 브로드웨이만 생각했던 내가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가능성을 알게 된 의미있는 날이었으며 또 한걸음 일보 전진이었다.
뉴욕지사의 김민섭선배
Saturday, June 22, 2013
3. 뉴욕 브로드웨이를 향해
경훈선배와의 만남 이후 선배에게 보여드릴 제안서를 구체화해 다시 경훈선배에게 연락을 드렸다. 선배는 날 대학로에 있는 사무실로 부르셨다. 공연장과 함께 있는 종로사무실과는 달리 대학로 사무실은 차분하며 독립된 분위기였다.
난 경훈선배에게 구체화 시킨 나의 아이디어를 PPT로 보여드렸고 제안서의 내용을 본 선배는 제안이 실현되기 위한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조언을 듣고 난 선배에게 세계여행을 향한 나의 절실한 마음을 표현했다. 세계 공연의 중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지만 난 뉴욕에 지인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얼마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공연 점프를 만든 눈앞에 있는 김경훈 선배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 선배에게 어떤일이든 돕겠다며 시키는 일은 무슨일이든 하겠다며 뉴욕에서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염치없고 대책없는 후배의 부탁이었건만 선배는 그 자리에서 뉴욕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주셨다. 시차때문에 전화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몇주 후 뉴욕지사장이 한국에 들어오기로 되어있으니 선배는 그 때 자리를 만들어 이야기해보자고 선배는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경훈선배의 응원과 도움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희미했던 꿈을 위해 한발자국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난 경훈선배에게 구체화 시킨 나의 아이디어를 PPT로 보여드렸고 제안서의 내용을 본 선배는 제안이 실현되기 위한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조언을 듣고 난 선배에게 세계여행을 향한 나의 절실한 마음을 표현했다. 세계 공연의 중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지만 난 뉴욕에 지인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얼마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공연 점프를 만든 눈앞에 있는 김경훈 선배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 선배에게 어떤일이든 돕겠다며 시키는 일은 무슨일이든 하겠다며 뉴욕에서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염치없고 대책없는 후배의 부탁이었건만 선배는 그 자리에서 뉴욕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주셨다. 시차때문에 전화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몇주 후 뉴욕지사장이 한국에 들어오기로 되어있으니 선배는 그 때 자리를 만들어 이야기해보자고 선배는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경훈선배의 응원과 도움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희미했던 꿈을 위해 한발자국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Friday, June 21, 2013
2. 김경훈선배와의 만남.
2학년 수업 중 광고특강이라는 수업은 우리 광고창작과를 졸업한 선배들 중 현재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배들을 강사로 초청해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듣는 수업이다. 이 수업을 통해 평소 만나고 싶었던 선배들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내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분은 논버벌 퍼포먼스 공연 점프를 만든 김경훈 선배였다. 공연기획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당시 세계로 진출하는 공연을 제작한 선배의 스토리가 무척 궁금했었다. 얼마 후 강의에 김경훈 선배가 초청되었고 말로만 듣던 선배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점프가 만들어지게 되는 3년간의 험난한 준비과정과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영국 에딘버러페스티벌에서 2년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고 세계 공연의 중심인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공연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얼마 전 배진환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내게 김경훈 선배와의 만남은 절호의 기회였다. 선배의 조언과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던 난 수업이 끝난 안산 캠퍼스에서 다시 종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선배에게 부탁해 차를 얻어 타는 대범함(?)으로 선배와 서울로 가는 한 시간 동안 선배와 독대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선배에게 얼마 전 결심한 세계여행에 대해 말씀드렸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생각한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낼 아이디어에 대해 말씀 드렸다. 선배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아이디어를 더 구체화 시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자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아이디어보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선배에게 다가온 당돌한 후배를 귀엽게 봐 주신 거 같다. 실체가 없던 나의 결심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오른쪽이 김경훈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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