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의 출국을 2주정도 앞두고 그 동안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고 해주신 경훈선배를 만나 식사를 했다. 경훈선배를 처음 만난지도 어느새 일년, 공장에서 경비를 할때도 허교수님프로젝트에 참여할때도 선배를 만나며 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미국으로 떠난다고 선배를 찾아갔을때 선배는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나의 선택에 진심으로 기뻐해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선배는 내게 택시타고 가라며 봉투를 하나 주셨고 친형님의 연락처도 알려주시며 뉴욕에 가면 꼭 연락해보라며 건투를 빌어 주셨다.
집에 돌아와 선배가 준 봉투를 열어보니 택시비라고 주신 봉투엔 100만원이 들어있었다. 선배에게 전활 걸어 봉투에 대해 이야기하니 선배는 여행하며 꼭 필요할거라며 받아두라고 하셨다. 당시 나에게 이 돈은 1000만원 이상의 가치와 의미가 있었다.
1년전 특강에서 한 학생이 선배에게 질문을 했던것이 기억난다.
학생 : 지금 가진 모든걸 잃고 망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경훈선배 : 전 지금 망해도 다시 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일어설거 같아요. 저의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거든요.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떠난다고 스스로 여겼지만 나에겐 항상 만나면 도전과 용기가 되는 후원자 김경훈 선배와 내 선택을 지지하는 여자친구 그리고 가족, 부랄친구 경민등 나에게도 큰 재산인 사람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Showing posts with label 김경훈.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김경훈. Show all posts
Tuesday, July 9, 2013
Friday, June 28, 2013
4. 김민섭선배와의 만남.
대학로에서 경훈선배를 뵙고 2주 뒤 선배가 얘기했던대로 뉴욕지사장님이 한국에 들어오셨다. 이번엔 종로사무실에서 선배를 만났다. 알고보니 뉴욕지사장님도 우리과 선배셨다. 물론 나와 같이 학교에 다니진 않았지만 학교선배님이라는 말에 반가움이 더했고 경훈선배는 민섭선배에게 어느정도 얘기는 해두었으니 둘이서 더 얘기를 나누라며 자리를 비켜주셨다.
민섭선배에게 난 세계적 공연을 만들고 싶고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 아이디어를 가져오겠다는 나의 청사진을 선배에게 펼쳐보였다. 그 후 돌아온 선배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민섭선배는 정말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면 여행할 돈으로 대학로에서 작은 공연이라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편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일하기 위해선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적어도 3년은 공부해야 원할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과 뉴욕 브로드웨이의 공연시스템은 이미 너무나 확고히 짜여져 있어 틈새 찾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세계공연계를 양분하고 있는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웨스트엔드는 뉴욕보다 상대적으로 신인에게 가능성이 더 큰 시장이라는 정보도 들을수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던건 아닐까. 드라마같은 안도타다오의 이야기에 취해 내 능력은 고려치도 않은채 욕심만 부리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날때쯤 경훈선배가 다시 돌아오셨다. 살짝 풀이 죽어 있는 날 본 경훈선배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민섭선배가 한 얘기에 너무 쫄지말란 격려와 함께 그래도 본인은 나의 결심과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되버릴 뻔한 나의 생각이 폐기 되기엔 아직 일렀다. 대신 뉴욕 브로드웨이만 생각했던 내가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가능성을 알게 된 의미있는 날이었으며 또 한걸음 일보 전진이었다.
민섭선배에게 난 세계적 공연을 만들고 싶고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 아이디어를 가져오겠다는 나의 청사진을 선배에게 펼쳐보였다. 그 후 돌아온 선배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민섭선배는 정말로 공연을 만들고 싶다면 여행할 돈으로 대학로에서 작은 공연이라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편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일하기 위해선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적어도 3년은 공부해야 원할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과 뉴욕 브로드웨이의 공연시스템은 이미 너무나 확고히 짜여져 있어 틈새 찾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세계공연계를 양분하고 있는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웨스트엔드는 뉴욕보다 상대적으로 신인에게 가능성이 더 큰 시장이라는 정보도 들을수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던건 아닐까. 드라마같은 안도타다오의 이야기에 취해 내 능력은 고려치도 않은채 욕심만 부리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날때쯤 경훈선배가 다시 돌아오셨다. 살짝 풀이 죽어 있는 날 본 경훈선배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민섭선배가 한 얘기에 너무 쫄지말란 격려와 함께 그래도 본인은 나의 결심과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되버릴 뻔한 나의 생각이 폐기 되기엔 아직 일렀다. 대신 뉴욕 브로드웨이만 생각했던 내가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가능성을 알게 된 의미있는 날이었으며 또 한걸음 일보 전진이었다.
뉴욕지사의 김민섭선배
Saturday, June 22, 2013
3. 뉴욕 브로드웨이를 향해
경훈선배와의 만남 이후 선배에게 보여드릴 제안서를 구체화해 다시 경훈선배에게 연락을 드렸다. 선배는 날 대학로에 있는 사무실로 부르셨다. 공연장과 함께 있는 종로사무실과는 달리 대학로 사무실은 차분하며 독립된 분위기였다.
난 경훈선배에게 구체화 시킨 나의 아이디어를 PPT로 보여드렸고 제안서의 내용을 본 선배는 제안이 실현되기 위한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조언을 듣고 난 선배에게 세계여행을 향한 나의 절실한 마음을 표현했다. 세계 공연의 중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지만 난 뉴욕에 지인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얼마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공연 점프를 만든 눈앞에 있는 김경훈 선배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 선배에게 어떤일이든 돕겠다며 시키는 일은 무슨일이든 하겠다며 뉴욕에서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염치없고 대책없는 후배의 부탁이었건만 선배는 그 자리에서 뉴욕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주셨다. 시차때문에 전화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몇주 후 뉴욕지사장이 한국에 들어오기로 되어있으니 선배는 그 때 자리를 만들어 이야기해보자고 선배는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경훈선배의 응원과 도움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희미했던 꿈을 위해 한발자국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난 경훈선배에게 구체화 시킨 나의 아이디어를 PPT로 보여드렸고 제안서의 내용을 본 선배는 제안이 실현되기 위한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조언을 듣고 난 선배에게 세계여행을 향한 나의 절실한 마음을 표현했다. 세계 공연의 중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지만 난 뉴욕에 지인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얼마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공연 점프를 만든 눈앞에 있는 김경훈 선배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 선배에게 어떤일이든 돕겠다며 시키는 일은 무슨일이든 하겠다며 뉴욕에서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염치없고 대책없는 후배의 부탁이었건만 선배는 그 자리에서 뉴욕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주셨다. 시차때문에 전화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몇주 후 뉴욕지사장이 한국에 들어오기로 되어있으니 선배는 그 때 자리를 만들어 이야기해보자고 선배는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경훈선배의 응원과 도움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희미했던 꿈을 위해 한발자국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Friday, June 21, 2013
2. 김경훈선배와의 만남.
2학년 수업 중 광고특강이라는 수업은 우리 광고창작과를 졸업한 선배들 중 현재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배들을 강사로 초청해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듣는 수업이다. 이 수업을 통해 평소 만나고 싶었던 선배들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내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분은 논버벌 퍼포먼스 공연 점프를 만든 김경훈 선배였다. 공연기획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당시 세계로 진출하는 공연을 제작한 선배의 스토리가 무척 궁금했었다. 얼마 후 강의에 김경훈 선배가 초청되었고 말로만 듣던 선배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점프가 만들어지게 되는 3년간의 험난한 준비과정과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영국 에딘버러페스티벌에서 2년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고 세계 공연의 중심인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공연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얼마 전 배진환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내게 김경훈 선배와의 만남은 절호의 기회였다. 선배의 조언과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던 난 수업이 끝난 안산 캠퍼스에서 다시 종로 사무실로 돌아가는 선배에게 부탁해 차를 얻어 타는 대범함(?)으로 선배와 서울로 가는 한 시간 동안 선배와 독대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선배에게 얼마 전 결심한 세계여행에 대해 말씀드렸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생각한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낼 아이디어에 대해 말씀 드렸다. 선배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아이디어를 더 구체화 시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자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아이디어보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선배에게 다가온 당돌한 후배를 귀엽게 봐 주신 거 같다. 실체가 없던 나의 결심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오른쪽이 김경훈선배님
Subscribe to:
Comments (Atom)


.jpg)

